포승줄에 묶인 김관진 장관을 보며
안녕 하십니까 장관입니다 장관이 올해 마지막 지시를 하곘습니다.
모두들 일찍 퇴근하세요. 2013년 12월 31일 오후 국방부 직원들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김관진 장관의 목소리를 듣고 깐짝 놀랐다.
김장관이 종무식을 방소으로 대신 하곘다더니 이런 엄명을 내린겄이다.
긴장했던 직원들은 웃슴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긴장 했던것은 평소 레이저 김이라 불린 그의 모습 때문이였다.
북한에 대한 응징을 이야기할 때 눈에 힘을 주고 강한 어조로 말해 붙은
별명이다. 독일 병정 같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독일 유학파다.
육사 생도 시절 매기수중 1명만 선발하는 독일 유학시험에 합격했다.
한달 생활비 60달러로 그럴듯한 식당에서 밥 한번 못 먹었다고 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합참의장으로 전역한 뒤 야인으로
있던 그를 국방장관이러는 구원투수로 불러냇다.
장관이 되자마자 그는 북이 도발하면 도발원점은 물론 지원 지휘 세력까지
타격하라며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됐다. 골프도 하지 않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가 국방장관이 된 뒤에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국지도발
이 없었다. 미 국방부에선 김관진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안보실장일 때인
작년 북이 지뢰 도발을 이르켰다. 그는 휴전선 너머 북한지역 에 강력한
155mm 포탄 29발을 한꺼번에 날려 보냈다. 북은 혼비백산했을 것이다.
엊그제 김 전장관이 포승에 묶여 검찰에 출두하는 사진이 신문에 싫렸다.
많은 군 관계자가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천주교 신자인 그의 아내가
면회 가 수도원에 가도 밥값을 내야 하는데 여기(구치소)선 밥값도 내지않는다.
수도원 왔다고 생각하시고 책도 보고 하시라며 위로 했다고 한다.
그는 그래야지 했다지만 만감이 교차했을 겄이다.
구속 전에는 적당히 타협하라고 조언한 측근들도 있었다고 한다. 부하들에게
미루면 어떻게 하나 내가 안고 가야한다는 게 그의 답이 었다.
최순실 사태와 최근의 적폐 수사로 많은 고위 공직자가 구속 됐지만 김전장관
처럼 죄가 있다면 내 책임이니 부하를 탓하지 말라며 아래를 감싼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그를 보고 진짜 군인이라고 다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국가에 헌신한 무골(武骨)을 하루 평균 10건도 안 된다는 인터넷 댓글
로 감옥에 부낸다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답답하다.
조선일보 만물상(萬物相) 유 용 원 노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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