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황현의 절명시와 경남일보

달음산 2010. 9. 5. 21:52

황현의 절명시와 경남일보
 
한일 강제합방 소식을 전북남원에서 들은 매천 황현(黃玹:1855.12.11-1910.9.10)은
칠언절구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머리가 되기까지/
몇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수없고 보니/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경남일보 주필 장지연(張志淵)은 황현의 이 절명시를 경남일보(1910.10.11)에 실으면서
 매천이 남긴 시를 몇번이고 읽으면서 떨어지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줄도 몰랐다'
며 통분의 심정을 덧붙였다. 총독부는 경남일보에 정간을 명하여 신문이 10일간 발행
되지 못하도록 탄압했다. 경남일보는 한해 전인 1909년10월15일 진주에서 창간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우리나라사람이 발행한 처음이면서 유일한 지방신문이였다....

초야에 묻혀있던 선비 황현은 국권이 완전히 상실된 절망적상황에서 목숨을 버렸다.
가물거리는 촛불아래서 피를 토하며 쓴 절명시는 진주에 홀로남은 한국어 신문 
경남일보의 한 귀퉁이에 실렸으나 100년이 흐른 후에도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장지연과 황현의 우국충정은 진주와 남원이라는 거리를 뛰어넘고 죽음과 삶을
초월하여 상통했던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정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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