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정부인 안동장씨

달음산 2010. 8. 28. 16:31

부인 장씨는 누구인가? | 음식 디미방

 

 

음식디미방에는 146가지에 달하는 양반들이 즐겨 먹던 음식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지혜까지 꼼꼼이 적어 놓고 있다. 음식에 관한한 없는 게 없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음식백과사전인 셈이다. 더욱이 이 책은 음식을 종류별로 나눠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원하는 종류의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가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렇게 방대한 양의 요리들을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정리한 사람은 330년 전 안동에 살던 양반집 마님인 정부인 장씨다. 정부인 장씨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러한 요리책을 남겼던 것일까? 그런데 정부인 장씨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졌던 인물이다.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1999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했고, 이문열의 소설 '선택(1997)'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 장씨는 누구인가?
 

이문열 : 정부인 장씨같은 경우는 내게 직계 13대 할머니가 된다. 그러나 선택의 주인공으로 정부인 장씨를 선택한 건 사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고, 이 할머니께서 보여 주신 삶이 우리가 흔히 현모양처. 가정적인 성취도 충분히 이루었고 아울러 사회적인 사회성도 가지고 있어, 어떤 여인 못지 않게 뛰어난 분이어서 우리 사회 이상형이 될 수 있다고 보아서 선택했던 거다.

 
 
   


광풍정(光風亭) : 경북 문화재자료 322호

1630년대에 장흥효(1464~1635)이 지은 정자로, 면적: 1,928㎡, 소재지: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774, 현재 정자의 모습은 헌종 4년(1838)에 이 지역의 유림들이 고쳐 지은 것. 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 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문화재청) *우측 사진 광풍정 뒤로 있는 것은, 자연 암벽으로 제월대(霽月臺)라 한다. 제월이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줄임 말로써 부단한 자기 수양을 통해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문열씨가 소설의 자료로 이용한 것은 정부인 장씨 실기. 숙종 때 이조판서까지 지냈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어머니인 정부인 장씨의 팔십 평생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실기에 의하면 정부인 장씨가 태어난 곳은 안동 금계리. 조일전쟁(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인 1598년 안동 장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안동장씨 족보에 의하면, 정부인 장씨는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 학봉 김성일의 정통 계승자)의 무남독녀다. 장흥효는 조선중기의 대학자로 집 가까이 광풍정(光風亭)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수백명의 제자를 길러냈던 인물이다. 관직도 마다한 채 평생을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는 데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이러한 장흥효가 35살 되던 해, 뒤늦게 얻은 자식이 정부인 장씨다. 장씨는 자연스레 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그 수준도 높았다. 전가보첩은 장씨가 10살 전후에 쓴 시를, 수로 놓아 모아놓은 것으로 이 시를 통해 장씨의 학문적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성인음(聖人吟)

성인의 때에 태어나지 못해서(不生聖人時), 성인의 모습 뵈옵지 못했으나(不見聖人面)

성인의 말씀 들을 수 있어(聖人言可聞), 성인의 마음 쓰심을 넉넉히 알리(聖人心可見)

 

경신음(敬身吟)

이 내 몸은 부모께서 주신 몸인데(身是父母身), 감히 이 몸을 공경하지 않을 손가(敢不敬此身)

이 내 몸을 욕되게 한다면(此身如可辱), 이것은 어버이 몸을 욕되게 함이로다(乃是辱親身)

 

소소음(蕭蕭吟)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장씨의 시에는 조선시대 여느 여류시인들의 서정적인 시와는 다른 성리학의 사상이 많이 흐르고 있다.
 

이동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장씨부인의 시 작품은, 바로 퇴계(이황) 심학의 주류적인 맥락 속에서 이뤄진다. 장씨 부인는 10여 세의 이른 나이에 심학에 대한 지성적인 자각하에 쓰여진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실기에 의하면 정부인 장씨는 소학과 중국의 역사서인 십구사략을 공부했다고 전하고 있다.

 

박광용 (카톨릭대 사학과) 교수 : 당시 보통여자는 소학 정도인데, 정부인 장씨는 소학은 기본일 뿐 아니라, 소학의 위인 사서오경. 그리고 현실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현실경험 역사책인 십구사략을 모두 공부한 걸로 되어있다. 그리고 15세 전후에 남아있는 시들은 수준이 높아 중국의 고서와 전부 관통이 된다.


 



정부인 장씨는 글씨도 능했다고 한다. 지금은 초서체로 쓴 학발시(鶴髮詩)만이 남아있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가인 청풍자(淸風子) 정윤목과의 일화로 그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김구현 (안동문화원 이사) : 하루는 청풍자께서 친구에게 노는 겸 찾아갔다. 찾아가서 여러 가지 고담준론을 하다가 글씨에 미쳐서 경당(장흥효)께서는 이 사람에게 나한테 글씨 좀 남기고 가게 해서 쓰신다. 쓰시고 난 뒤에 아버지 경당은 당신 외동딸이 쓴 글씨를 보인다. 청풍자는 처음 그것을 보더니만, "이게 과연 우리나라 사람 글씨인가, 이렇게 잘 쓴 글씨가 있나, 이 글씨는 조선 사람의 글씨와 유를 달리한다. 내가 처음 볼 때는 중국 대가의 글씨인줄 알았다."고 했다 한다.


 


조선시대 서화가들을 소개한 책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의하면, 장씨는 그림 실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그림은 10살 즈음에 그렸다는 호랑이 그림으로 사실적이고도 힘이 있다.
이렇게 학문적인 소양과 재능을 갖추었기에 정부인 장씨는 체계적인 요리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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