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봉정암에..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여름을 향해 달리는 절기임에도 이른 아침의 백담계곡은 서늘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봉정암을 향해 걸음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삼보일배로 수행 중인 한 처사를 만났다. 처사의 행색은 단출했다.
작은 배낭 한쪽에 생수통이 담겨 있고, 종아리는 단단한 각반으로 감쌌으며, 우중(雨中)에도 삼보일배에 지장이 없도록 방수용 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땅바닥을 짚고 절하는 데 편리하도록 손에는 두툼한 장갑을 끼고 있었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행위를 말없이 반복하는 처사에게 보조를 맞추어 잠시 함께 걷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다.
“처사님 삼보일배의 여정은 어디까지입니까?”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할 참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문현답이 좀 더 이어졌지만, 더는 대화를 원치 않는 수행자에게 무례를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왜 삼보일배를 하십니까?” 뻔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안타까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에,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란 짧은 답이 돌아왔다.
삼보일배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흔히 첫걸음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두 번째 걸음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塵心)을 멸하고, 세 번째 걸음에 치심(恥心·어리석음)을 멸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면서 자신이 지은 모든 나쁜 업을 뉘우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는 서원을 하고 있는 이에게 삼보일배를 하는 이유를 물었으니 나의 무지가 지금도 부끄러울 뿐이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시림 안으로 난 숲길이다. 삼보일배를 하는 처사처럼, 불자에게는 생애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할 순례자의 숲길이라 할 수 있다.....